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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 재조명] (2)농촌도 새 모델로 재건
 
2003년 08월 08일 오후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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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도(全圖)를 보면 꼭 '털 뽑은 닭'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 동북 3성이다. 동북쪽에서부터 차례로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린성(吉林省), 랴오닝성(遼寧省)이 있다. 지린성을 중심으로 한 동북평원은 중국 3대 평원으로, 중국에서도 곡창지대이다. 특히 지난 100년간 중국 조선족이 개척하고 일군 논에서 생산한 '입쌀'은 최상품 취급을 받아왔다.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신합촌에서 태어나 제9기 인민대표를 역임했던 이동춘 백두산집단 회장은 "중국 대부분의 농촌 마을이 농사짓는 것으로 모자라 오히려 국가에서 배급을 받아야 했는데, 조선족이 개척한 마을에서는 나라에 세금을 낼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 중국 내에서도 조선족 농촌의 입지가 튼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197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도 시장경제가 본격 도입되면서 이전의 조선족 농촌사회는 급격한 해체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대부분의 농촌이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조선족 농촌 사회는 92년 한중 수교이후 새 산업과 새 비전을 찾아 중국 내 대도시나 한국을 찾은 사람이 많아지며 해체의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최근 기자가 둘러본 중국 조선족 농촌사회는 10여년 동안의 '해체 위기'를 수습하고, '21세기형 농촌'으로 거듭나기 위한 재편과정에 있었다. 또 농업과 상공업을 결합하는 한편 농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땅을 살리면 희망이 보인다"

조선족의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헤이룽장성 하이린시 신합촌(新合村). 이 촌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10여년 동안 급속한 해체의 길을 걸었다.

문태인 촌장은 "신합촌에는 총 570호 2천376명이 호구(주민증록)를 가지고 있는데, 이중 한국에 840명이 나갔고, 대도시로 나간 인력도 200명을 헤아린다"고 말했다. "한 집에 1명 이상이 외지로 나가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문 촌장은 특히 "노동력을 기준으로 할 때는 80%가 떠났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제 더 이상 촌을 구성하기도 힘들어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신합촌은 오히려 새 비전을 갖고 다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새 실정에 맞추어 과감하게 전개한 토지개혁이 눈에 띄었다.

문 촌장은 "땅을 이탈할 때는 실가격으로 양도를 할 수 있게 하되, 촌민위원회 감독 하에 반드시 신합촌 주민이나 촌민위원회에 팔도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규모 농가가 생기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과거 대부분의 농가가 1헥타르를 경작했지만, 지금은 30헥타르를 경작하는 농가도 생겼다.

또, 농사짓기에 부적절한 토지는 과감하게 상업과 공업 용지로 전환했다. 농사 대신 상업과 공업에 자질을 갖춘 사람은 과감히 전업을 하게 했다. 소규모 농사보다 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셈이다.

신합촌의 자랑은 백두산집체기업의 설립이다. 백두산 기업은 촌민들이 공동으로 만든 기업으로, 농기구, 무역, 부동산개발 등의 영역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베이징, 칭다오(靑島), 한국 등에서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안광일 백두산기업 사장은 "농사만 짓다 사업을 하니 초기에 난관도 있었지만, 촌의 발전을 위해 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고 말했다.

신합촌은 특히 한국에 나간 대부분의 사람이 결국 돌아올 곳은 고향이라는 판단에 주거환경 개선작업에도 주력하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지난 3년 동안에 10동의 아파트를 지어 500 가정을 입주시켰다. 지금도 아파트를 짓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대규모 상업거리를 구축해놓고 있었다.

문 촌장은 "해체되던 신합촌을 이렇게 재조합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도움도 컸다"며 "토지용도 변경, 아파트 무세금 건설 등 조선족 집중촌 건설에 부닥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정부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고 말했다.

"조선족 근거지 새 모델을 세운다"

랴오닝성(遼寧省) 센양(沈陽)시 만융촌(滿融村)은 동북 3성에 거주하는 조선족 사회 재조합의 가장 선진적인 모델로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만융촌은 동북 3성의 중심도시인 센양시 중심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농(都農) 접점 지역으로, 교통 요건이 좋다는 잇점을 살려, 1990년대 초반 800세대이던 촌 규모를 오히려 1천600세대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다른 조선족 촌이 해체의 길을 걷는 와중에 만융촌은 오히려 그들을 흡수하며 더욱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융촌은 앞으로 3천 세대 1만 촌민을 모으는 게 목표이다.

박승택 촌장(당위서기)은 "마오쩌뚱(毛澤東)은 '혁명근거지론'을 통해 중국 혁명에 성공했다"며 "해체 위기에 있는 조선족도 근거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해졌다"며 "만융촌이 개혁 개방 이후 조선족이 살아갈 근거지 모델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촌장은 "사람이 모이게 하려면 경제발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한국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 크고 작은 20여개 기업을 유치시켰다"고 설명했다.

만융촌은 또 한국 등에 나갔던 사람과 이사해온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각종 서비스 업소를 38개까지 확산시켰다. 농업 중심의 촌에다 상공업을 적극 결합시켜 경제력을 높이니 조선족이 다시 모이게 된 셈이다.

만융촌은 특히 조선족의 경우 교육열이 높다는 점에 착안, 학교 지원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 촌은 컴퓨터 보급률이 45%에 달할 만큼 선진적이 됐다.

만융촌이 이처럼 조선족 해체 위기에서 성공적인 재조합 과정으로 옮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박승택 촌장(49)을 중심으로 해 리영숙(40), 리창호(52), 박병숙(39), 김학천(43), 박춘명(51), 리문길(51) 등 촌 간부들의 헌신적인 애향심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노하우 공유

두 촌외에 동북 3성에서 조선족 집중촌의 성공 사례는 많다.

대개 도시에 인접한 촌이 많으며, 신합촌과 만융촌을 필두로 하얼삔(哈爾濱)시 도리구 우의촌, 지린성(吉林省) 용정시(龍井市) 조양촌, 지린시(吉林市) 아라디관리구, 센양시 화원신촌 등이 해체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사례로 제시된다.

이들은 특히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교환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 대표 인터넷 사이트인 차이나코리안닷컴(http://www.china-corean.com/)도 이들 촌의 촌장의 발기로 조선족 지성인이 참여해 발족했다.

이들은 차이나코리안닷컴 발기문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조선족 촌은 황폐화되었다"며 "조선족이 집중촌을 건설하고, 다시 이를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해 해체 위기를 돌파하자"고 주장했다.

특히 "뜻있는 촌 간부와 지성인, 전체 동포의 책임있는 참여가 중요하다"며 "힘을 합치는 게 우리의 발전이요, 생명"이라 했다.

/센양(沈陽)·하이린(海林)=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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