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뉴스
아이뉴스24 홈 오피니언 프리미엄 엠톡 콘퍼런스
IT.시사 포토.TV 게임 아이뉴스TV 스페셜
조이 홈 연예 연예가화제 스타룩 TV.방송 드라마 가요.팝 영화 스포츠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 스포츠일반 기업BIZ
Home > 스페셜 > 조이뉴스 창간10주년
[창간10년]특별 대담-전북현대①이장님과 단장님의 '밀당' 10년 동행
최강희 감독과 이철근 단장의 찰떡 호흡을 파고들다
2014년 11월 03일 오전 07:28
  • 페이스북
  • 0
  • 트위터
  • 0
  • 구글플러스
  • 0
  • 핀터케스트
  • 0
  • 글자크게보기
  • 글자작게보기
  • 메일보내기
  • 프린터하기
[이성필기자] 한국 사회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은? 다른 나라에서 50년 동안 일어날 일들이 10년 안에 다 일어나고는 한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속도에 휩쓸려 갈 수 있다.

프로축구 K리그의 지난 10년은 어땠을까. 단일리그에서 6강 플레이오프, 스플릿 시스템 등 온갖 제도 변경이 계속됐다. 제도 손질로 어떻게든 흥행을 살려보려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들의 노력이 안쓰럽기도 하고, 이를 수용하고 즐겨야 하는 팬들을 바라보면 짠하기도 하다.

그런 변화의 와중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며 성적을 낸다면 응당 박수를 쳐주는 것이 마땅하다. 2000년대 중반까지 그저 그런 구단이었던 전북 현대가 최근 걸어온 10년의 행보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덜컥 해내더니 그 이후 두 번의 정규리그 정상(2009년, 2011년)에 올랐고 올해도 리그 1위를 질주하며 우승 문턱 가까이 다가섰다.

그 원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K리그를 호령하는 전북 전성시대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10년을 함께 구단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댄 '봉동이장' 최강희(55) 감독과 이철근(61) 단장의 밀당(밀고 당기기)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침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조이뉴스24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해온 지난 10년이 궁금해 지난달 29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 소재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기자를 먼저 본 이철근 단장은 "나 감독이랑 안 친한데 뭐하러 인터뷰를 하자고 했어"라며 살짝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감독실에서 만난 최강희 감독도 "아니 단장님과 늘 보는데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라며 그 특유의 언변으로 기자에게 원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와인으로 쌓은 인연, 돌이킬 수 없는 동반자 돼버렸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2005년 6월 최강희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관전하다 전북의 사령탑을 맡았다. 축구대표팀 코치로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을 보좌하다 사임한 그는 유럽으로 떠나 박항서 감독과 함께 독일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과 U-20 월드컵을 보며 축구 공부로 머리를 식히다가 쓰러져가는 전북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전북의 새 감독 후보로 세평에 오른 인물은 많았지만 최강희 카드는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최 감독은 그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최강희 감독(이하 최)="독일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이랑 네덜란드 U-20 월드컵이 있어서 박항서 감독과 함께 보러 다니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양재동(현대기아차 본사)에서 면담하자고 하더라. 가면서 속으로 '내가 감독 선임이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선수들의 이력서나 팀 구성, 인프라, 문화, 정서 등을 살펴보고 감독이 가야 되는데 전혀 모르고 갔다. 전북은 전혀 몰랐다. 막상 가서 실망도 많이 하고 내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팀을 이끌어 갈 수도 없었다."

최 감독의 표현처럼 전북은 현대자동차그룹이라는 훌륭한 모기업을 배경에 두고서도 발전은 고사하고 그저 그런 팀에 머물러 있었다. 투자를 적게 하는 것도 아닌데 효과적인 구단 운영이 안되고 있었다. 선수들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여서 최 감독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런 팀에 이 단장은 최 감독을 어떻게 모셔(?)왔을까.

이철근 단장(이하 이)="2004년 연말 서울 압구정동에서 현대 출신 부부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 가니 최 감독이 있었다. 와인도 마시고 기분이 좋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최 감독은 수원 삼성 시절 김호 감독 밑에서 오래 코치 생활을 했다. 모시기 어려운 사람 밑에서 오래 있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모실 기회가 있으면 감독으로 영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감독을 바꿀 때가 왔다. 구단에서는 다른 생각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최 감독을 추천했다."

최 감독을 영입하며 급한 불을 끈 뒤 이 단장은 5년 단위 구단 발전 계획을 세웠다. 2003년 전북 사무국장으로 와서 2년 만에 단장이 됐지만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최 감독에게도 이를 설명하며 함께 하기를 바랐다. 더 이상 전북이 이도저도 아닌 구단으로 머무르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전북에 온 뒤 내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더 도전적으로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처음에는 단장님과 자주 부딪혔다. (5년 단위 계획) 그런 것을 모르고 요구하고 떼를 썼다. 감독을 시켜줬더니 터무니 없는 소리만 한 것이다. 클럽하우스는 없고 경기는 계속 지고 답보 상태였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고비도 있었고 뛰쳐 나가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이뤄졌다. 단장님이 안계셨으면 팀 나갔을 거야. 비빌 언덕도 없잖아."



200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계기 이해 깊어져, 구단 이미지 개선 박차

전북은 2005년 FA컵 우승 자격으로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얻었다. 2006년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을 얻으며 드라마처럼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알 카라마(시리아)를 꺾고 대망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강희대제'로 불리게 된 최 감독의 리더십이 꽃을 피우며 틀을 잡는 순간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전북이라는 팀의 이미지를 확 바꿔놓는 효과로 이어졌다. 전북은 툭 하면 팬과 프런트가 싸우거나 프로축구연맹에 판정 불만을 이유로 제소하고 벌금을 부과받는 등 문제 투성이 구단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아시아 정상 정복으로 씻겨져나갔다.

이="지나고 나면 어려운 것은 다 잊는다. 좋은 것만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옛날에는 정말 힘든 게 많았다. 매일 싸우고 제소하는 상황에서 2005년 단장이 됐지만 힘이 없었다. 대표이사가 있는 상황에서 역할을 하려니 힘들었다.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코칭스태프는 선수 사달라고 하더라. 자유선발이라 그나마 선택을 잘했다. 그 이후 최 감독이 왔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 모기업에서 조금씩 더 관심을 가졌고 원활한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최="2005년 FA컵 우승 후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게 된 뒤 팬들은 많은 투자를 바랐지만 당시 모기업은 여러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에도 효과를 내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2007년 리그성적은 7~8등을 오갔다. 2008년 초반에 잘못되고 수원이 5연승을 거두면서 정말 시끄러웠다. 신광훈이 임대 오고 루이스가 입단하면서 6강 플레이오프에 갔고 어렵게 잘 풀렸다."

이 단장은 최 감독에게 모기업의 사정과 구단이 나아가야 할 길을 꾸준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최 감독도 그저 구단에 모기업으로부터 얼마를 얻어와 선수를 사달라는 식의 평면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 모든 상황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이 단장은 양재동 현대차 사옥의 문턱이 닳도록 오가며 구단 운영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애썼다. 최 감독도 자금 사정에 맞춰 선수들 운영 계획을 세워 영입하고 내보내며 팀의 재정비를 위해 힘썼다.

물론 기업 경영 시스템과 스포츠 구단의 운영 특성이 같은 틀로 구성되기는 어려웠다. 이 단장이 본사를 자주 간 것도 그런 특성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챔피언스리그 우승 상금으로 받은 6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5억7천만원)는 모기업이 귀속하려고 했다. 연봉을 모기업에서 지급하고 있는데 상금이 선수들에게 왜 필요하냐는 논리였다. 최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 단장은 최 감독을 직접 본사에 데리고 갔다. 직접 확인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상호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챔피언스리그 우승 후 상금을 선수들에게 배분해야 하는데 모기업은 회사 논리를 내세웠다. 급여를 줬으니 상금은 귀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풀기 위해 한 달을 오가며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현대자동차에 재직중이던 한 부사장이 도움을 주기도했다."

최="어려운 문제를 단장님이 풀었다. 우승하고 본사에 데려가시더라.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문제를 직접 풀었다. 그 때부터 단장님의 일이 이해가 됐다."



믿음으로 함께 한 5개년 계획

2009년 전북은 정규리그 첫 우승을 차지한다. 최 감독은 이동국, 김상식을 바로 세워 '재활공장장'이라는 영광스런 별칭을 또 하나 얻었다. 첫 리그 우승에 현대자동차도 감격해 축승연을 열어줬다. 이 자리에서 최 감독은 정의선 부회장에게 거침없이 클럽하우스 건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정 부회장도 통크게 클럽하우스 건립을 약속했다.

동시에 전북 구단은 모기업이 진출하는 해외 시장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브라질 전지훈련이 대표적이다. 2010년 괌에서 전지훈련을 했던 전북은 2011년부터 브라질 상파울루 인근 도시에 전훈 캐프를 차리고 구슬땀을 쏟았다. 축구단이 현대자동차의 이미지 알리기와 시장 개척에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일산, 성수 지점장을 경험했던 이 단장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선수단 입장에서는 지구 반대편으로 전지훈련을 가는 것이 피곤한 일이지만 최 감독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즌을 앞둔 전지훈련은 한 시즌 농사의 절반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아무리 브라질이 축구 선진국이고 훈련 여건이 좋다지만 26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에서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었을까.

최="나는 단장님께 반항해본 적이 없다.(웃음) 감독은 구단의 정서를 절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표팀 감독으로 갔을 때도 대한축구협회에서 하는 것은 다 협조했다. 모기업이 하는 일에 고집을 부릴 수 없다. 불만이 있어도 감수해야 된다. 4년 연속 브라질에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28시간을 가는데 젊은 선수들에게 미안하더라. 그래도 금새 가서 적응하더라. 모기업에서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나는 기업이나 구단 입장 모두를 이해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올해 챔피언스리그에서 멜버른 원정을 갔다가 오는데 광저우를 거쳐 오는 일정이 있었다. 감독이 전문가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장 빠른 노선이 홍콩을 거쳐 오는 것이었다. 그 때 멜버른 원정 후 인천에서 K리그를 치른 뒤 다시 광저우로 원정 나가는 일정이었다. 한 달은 후유증이 가겠다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태우고 싶은데 규정이 이코노미 클래스니 단장 입장에서 미안했다."

이 단장은 축구가 글로벌 스포츠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모기업에도 이를 이해시키며 구단의 운영과 선수단 운용 계획을 설명하며 합리적 자금 집행을 도모하고 있다. 최 감독이 원하는 선수 영입도 복합적인 틀을 통해 돌아간다. 모기업이 구단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을 두 사람 모두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최="모기업이 돈을 써서 축구단을 운영하면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 1번이 성적, 2번이 대외 홍보다. 그런 것들이 같이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전북이 K리그에서 분명히 무시 못하는 팀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 됐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모기업에서 축구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는 달려졌다는 것이 내게는 큰 보람이다. 축구단에 관심을 갖고 성적을 내면 훨씬 더 축구단이 커질 수 있다. 내 입장에서는 K리그 전체가 위축되고 있는데 FC서울이나 수원 삼성, 포항 스틸러스처럼 전통 명문 강팀들과 같이 끌고 나가야 리그가 활성화 된다. 전북 입장에서는 정규리그 우승도 중요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에 도전해야 되는 팀이다."

이="축구는 국제용이다. 시장은 개방되어 있다. 태국 프리미어리그에서 70만 달러를 줄테니 선수들 달라더라. 더 이상 국내에 데리고 있지 못한다. 세계 시장 환경이 바뀌는데 K리그는 축소하려고 한다. 전북이 돈을 펑펑 쓰는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올림피크 리옹하고 경기하는데 0-4로 지면 모양이 안나지 않느냐. 돈 대주는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쓰라고 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우리보고 폭풍 영입한다는 소리를 하니 모기업의 자금 집행 부서에 가면 민망하더라. 돈을 많이 쓴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자금 집행도 모기업과 어떤 융합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언제까지 모기업만 바라보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모기업 사정이 악화되면 자금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원이나 포항이 그런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호흡을 보여온 최 감독과 이 단장에게 이런 문제에 대한 자구책이 있을까?

<②편에 계속…>



/완주=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IT 시사 문화 연예 스포츠 게임 칼럼
    • 아이뉴스24의 뉴스를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SPONSORED

    칼럼/연재
    프리미엄/정보

     

    아이뉴스24 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