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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민족 경제 현장을 가다] 칭다오편(2)
 
2003년 10월 31일 오후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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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靑島) 유정공항에서 차를 타고 시내로 20여분 들어오면 중국 최대 가전 업체인 하이얼(海爾) 본사의 건물을 확인하게 된다.

그 위풍당당함이란…. 그야말로 '중국의 힘'이다.

하이얼이 어떤 업체인가. 저가(低價)를 무기로 미국 가전 시장에서 한국 업체를 밀어내는 위협적인 존재이며, 최근에 국내 시장에서도 '중국 가전 비상령'을 발동시킨 기업이 아니던가. 그 힘의 본산이 칭다오에 있는 것이다.

특히 하이얼 본사와 공장을 우측으로 하고 곧게 뻗은 대로(大路)의 이름이 하이얼로(海爾路)이고, 하이얼로 직전의 고가(高架) 이름 또한 하이얼을 차용한 것을 확인할 때 이 회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애착을 실감하게된다.

마치 한국에서 포항하면 포스코(포항제철)가 떠오르는 것처럼 하이얼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 위압적인 칭다오에서 새로 기업을 일구는 한국인과 중국 조선족이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의 노력 끝에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도 있고, 새로 자리를 잡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는 기업도 있다.

모두 '한민족 경제권'을 일구고 있는 주역들이다. 칭다오에 불태운 그들의 '젊음'과 '열정'이 한민족 경제권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칭다오에서 존경받는 한국 외교관

중국에 '한민족 경제권'을 만들기 위해 한국 공관의 역할이 중요할 것임은 자명하다. 한민족 경제권은 중국 내 한국인은 물론이고 중국 조선족까지 아울러 우리 민족 모두의 생활 터전을 만드는 대역사(大役事)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와 우리 공관의 치밀하고 정교한 협력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 점에서 청도 주재 박종선 총영사는 귀감이 되고 있다.

흑룡강신문 박영만 청도 주재기자는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내 한민족 경제권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국 공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박종선 총영사는우 중국 주재 한국 외교관의 귀감으로서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평했다.

그에 따르면 박 총영사는 다른 외교관과 달리 중국 조선족 끌어안기에 남다른 신심을 가졌다. 과거에는 한국 외교관이 조선족과 만나는 것을 꺼려했으나 박 총영사는 조선족과 적극적인 교류를 갖고 지원한다는 것이다.

박 총영사는 칭다오에 있는 조선족 기업가 30여명을 10월초 서울에서 열린 '한상(韓商)대회' 때 참석케 함으로써 한중 교류를 가속화했으며, 조선족 사회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조선족 기업을 위해 중국 정부 관계자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다닌다.

우리 민족이면서도 중국인인 중국 조선족을 적극적으로 껴안아 한중 동반 발전을 통한 한국 경제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박 총영사는 이에 대해 "한중수교 초기에 조선족과 화교가 한중 교류의 교두보였으나, 수교 11년이 지나면서 점차 한국어를 배운 한족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며 "조선족을 더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인과 조선족의 일부 부정적인 사례에 비춰 조선족을 멀리 할 게 오히려 조선족의 한국어 활용 능력을 배양해 한중 교류의 교두보로 적극 견인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조선족 직업인의 야간 한국어 학습, 조선족 소학교 및 중학교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총영사는 이와 함께 "중국 조선족은 한민족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중국인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도 조선족 발전을 적극 지원해야 하며, 이를 통해 한중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발전하는 길을 모색해한다는 점을 중국 정부 측에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은 양국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 박 총영사는 지난 해 8월 청도 총영사로 부임했다.

◆칭다오의 한국 IT 개척자

칭다오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대부분 제조업이다. 그런 만큼 중국 조선족 기업가도 제조나 무역 쪽에서 사업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IT 회사인 청도이세기망락기술유한공사(E-CENTRY) 신영환 사장의 사업 스토리는 독특한 편이다. 그는 흑룡강사범대학 출신(67년생)으로, 일찍이 미국 시카고에 건너가 'PDD'란 화학회사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그 뒤 PDD 베이징 법인으로 발령을 받는다.

또 얼마 뒤에는 칭다오로 와 신동아코퍼레이션을 창업한다. 이 또한 화학회사로 신 사장이 보유한 6개 기업의 모기업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매출은 한화로 연간 400억원대라고 한다.

그런 신 사장이 IT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은 최근이다. 모기업인 신동아는 전문 경영인에 맡기고, 최근에는 e-센추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8월에는 e-센추리 한국 법인도 설립했다. 발전된 한국의 IT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에서의 사업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e-센추리의 주요 사업은 온라인 게임, 전사적자원관리(ERP), 응용 소프트웨어 서비스 제공(ASP) 등. e-센추리는 특히 한국인과 조선족을 포함해 칭다오에서 활약하는 거의 유일한 한민족 IT 기업이어서 그 향방이 주목된다.

신 사장은 "중국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지만 칭다오에서도 IT는 이제 시작 단계"라며 "한국과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설명하였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을 두루 아는 그의 노하우가 기대된다.

◆한국 보일러 유통의 개척자

중국 조선족인 김송현(46) 김영숙(45) 부부의 꿈은 보일러 제조업체를 설립하는 것이다. 5년 안에 꿈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갖고 매진 중이다.

칭다오에 있는 그들의 회사를 방문한 것은 귀국일인 10월24일 오전. 오후 2시50분 비행기표를 예약해놓아 마음이 바쁜 채로 회사를 방문했다. 남편 김송현 사장은 외근 중이고 아내 김영숙 부사장이 회사를 지키고 있다.

이 회사는 '귀뚜라미 보일러 청도 총판'으로 1층 건물에 20여평 가량의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첫 인상은 '다소 초라하다'는 느낌 그대로였다. 하지만 김 부사장과 대화하면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느껴졌다.

이 회사는 직원 40여명 규모로, 1년에 귀뚜라미 보일러 1천여대를 판매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높이고 있었다.

김 부사장은 "보일러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도가 높고 신용과 성실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경동보일러 같은 경쟁 업체에서도 총판 계약을 하자며 찾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사장은 신의를 지키기 위해 귀뚜라미 보일러만 영업한다고 한다. 김 부사장은 "사업은 신의와 신용"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김 부사장은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 보일러 제조회사를 설립해 독립하는 게 꿈"이다는 야망을 감추지 않았다. 남편인 김 사장이 지린성(吉林省) 용정(龍井)에 있을 때 대형 펄프 공장 보일러 담당으로 일한 뒤부터 지금까지 십 수년간 보일러에 전문성을 획득했으며, 청도에서 보일러 사업을 시작해 6년여 동안 시장도 어느 정도 개척한 만큼 승산이 충분하다는 계산. 문제는 창업 자금인데 이를 준비하기 5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보일러 외에도 최근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건축 인테리어 사업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다.

김 부사장은 연태시 개발구에서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 곳에 보일러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회사 사장을 만나러 갔다. 하지만 사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다.

그런 뒤에야 간신히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장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바로 건축 인테리어 사업이다. 건설회사 사장이 김 부사장의 배포에 마음이 동해 중요한 일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김 부사장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또 인터넷을 뒤져 한국 인테리어 업체를 찾아낸 뒤, 제휴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김 부사장이 이처럼 사업감각을 익힌 곳은 한국기업이었다. 연변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한 때 교사로 일하다, 칭다오로 진출하면서 월급 360위안(한화5~6만원)을 받고 섬유업체인 대농방직 중국법인에서 근무하게 됐다.

김 부사장은 여기서 2천300여명의 직원에 대한 노무, 인사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중국 직원을 한국 기업문화에 맞게 개조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였다. 그렇게 6년여를 일하며 회사 관리와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한 것이다. 이후 남편과 함께 창업을 하였고, 당시 대동방직의 사장이 창업자금 50만 위안을 쾌척하였다. 담보는 딱 하나, 그의 '신의'였다.

칭다오에서 키운 김 부사장의 꿈이 하나둘씩 영글어 가고 있었다.

/칭다오(靑島)=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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