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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스페셜 > IT로 일어서는 중국 조선족
"선구자 후예들과 손잡고 중국사업 해보고 싶다"...양기곤 벨웨이브 사장
 
2003년 07월 11일 오후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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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맥스'를 아는 이는 많다. 이름 앞에 늘 '벤처 신화'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길 햇수로 벌써 몇 년 째다. 그런데 올들어 벤처기업 가운데 수출 실적으로 휴맥스를 누르고 1위에 올라선 기업이 있다.

'벨웨이브'.

하지만, 이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휴대폰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성이 자자하지만, 국내시장에 제품을 내놓지 않은 데다, 아직 주식시장에 공개하지도 않아, 일반인에겐 낯설다.

마찬가지로, 벤처업계의 기린아인 변대규 휴맥스 사장에 비하면, 일반인에 대한 양기곤 벨웨이브 사장의 지명도는 아직 낮은 편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중국을 방문할 때 수행 기업인 명단에 양 사장을 포함시켰었다. 국가 경제에 대한 벨웨이브의 공헌과 중국 사업에서 벨웨이브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봐도 좋을 대목이다.

그런 양 사장이 최근 또 다른 '국가적 이슈'를 제기했다.

inews24와 공동으로 동북아 시대의 주역으로서 한국과 중국의 동반 발전을 위해 가교 역할을 해낼 '중국 조선족'과 '지한파 중국인'에 대한 재조명 작업에 나선 것.

이는 특히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동북아 허브'를 구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사업을 위해 지난 8일 출국한 양 사장을 7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만났다.

백두산에서 느낀 민족애

"지난 해 여름 백두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정상에서 드넓게 펼쳐진 만주 벌판을 보았죠. 광활함 그 자체였습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웅장한 기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또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이역만리 떠나온 독립군들의 우렁찬 말발굽 소리도 들리는 듯 했습니다. 길림성 용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 기념관에서도 가슴 한 켠이 떨리는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양 사장은 한 기업의 CEO로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개인적인 소회부터 담담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느낌은 안타까움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동북아의 또 다른 주역인 중국 조선족, 그리고 그 심장부인 연길은 노래방과 술집 등 소비 중심의 문화로 가득 차 있더군요. 여러가지 사회 인프라도 빈약했습니다. 더구나 한국 사람들과 중국 조선족 사이의 갈등과 오해도 익히 들어오던 터입니다. 이 때 생각했습니다. 100여년 전 가난을 피해 국경을 넘은 조선 사람들, 또 일제로부터 독립을 위해 떠났던 독립군, 모두 우리 민족의 선구자들이죠. 이제 한국은 그 선구자들의 후예와 함께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고, 저도 뭔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느껴졌죠."

다소 흥분된 그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거기서 생각한 게 조선족, IT, 인력, 산업 등 4개 키워드입니다. 이 키워드를 잘 결합하면 제 본업인 '비즈니스'와 '민족' 사이에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접점을 찾아내고자 하는 거지요."

"조선족은 韓-中을 잇는 가교"

이 대목에서 까닭 모를 불안감이 스쳐왔다. 기업 CEO는 아마추어여서는 안된다. 그의 말은 기업 CEO의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하려는 일은 기업 몫이 아니겠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운동 단체(NGO)나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들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말로 생각됐다.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금세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우선 조선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길 반복하다 보면 가능성과 역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오히려 조급해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기자였다. 사회운동가일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사업가인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궁금해졌다.

"궁극적으로 조선족과 서로 윈-윈하는 사업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조선족 경제를 일으켜야 중국과 더불어 한국 경제도 잘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조선족은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모순된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라는 측면에서 조선족은 중국과 한국 사이의 가교이지만, 산업과 경제라는 측면에서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지요. 그 길을 트고 역할을 만들어나가는 게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기업에 조선족의 도움 절실하다"

그의 조선족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설득조'로 바뀌고 있었다.

"한국과 거래하는 중국기업은 조선족에 대한 채용을 늘리고 있습니다. 사업 역량을 가진 조선족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한국과 중국 사이에 조선족이 필요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는 거지요. 벨웨이브와 거래하고 있는 중국의 휴대폰 업체인 아모이소닉의 부총재 비서가 조선족입니다. 샤먼(하문) 대학 경제학부를 나왔는데, 아모이소닉 부총재나 저 모두 양사 사업의 발전에 그의 역할이 대단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비즈니스'와 '민족' 사이에 어떤 접점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것을 구체화하는 일만 남았다는 듯이 들렸다.

"휴대폰 개발 업체인 벨웨이브의 경우 중국에서 3가지 정도의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생산 공장 설립, 제품의 중국 현지화를 위한 R&D 법인 설립, 유통 법인 설립 등이 그것이죠."

양 사장의 눈빛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 속에는 민족에 대한 열정은 물론이고 벤처기업 가운데 수출 1위를 차지한 기업의 CEO답게 비즈니스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번득였다. 조선족에 대한 그의 '희망론'도 계속됐다.

"한국 기업으로 봐서는 생산, 연구개발, 유통 분야에서 조선족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조선족의 경우 한국과 중국의 말과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 분야에서는 비용 절감 효과가 대단히 큽니다. 국내에서 파견할 관리 분야 인력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조선족은 또 연구개발분야에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휴대폰의 경우 중국형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글자 입력 등 인터페이스 분야에서 가장 잘 할 사람이 조선족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모두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선족과 사업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점도 시인했다.

"중국 전문가는 많습니다. 중국 말과 한국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 대개는 전문가라고 하지요. 그런데 사업은 그렇잖습니다. 사업의 파트너는 언어 이외에도 업종의 대한 전문성, 신뢰도, 인품 등 여러 가지가 요구되지요. 이점에서 (조선족 가운데) 좋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조선족에 대한 그의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가만히 있어는다고 좋은 사람이 생기는 것은 더욱 아니지요. 좋은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만 생깁니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노력하고 신뢰를 쌓아가다보면 일하기 좋은 파트너가 나타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요."

"만주에 휴대폰공장 짓겠다"

사실 양 사장에게 중국은 '은혜의 땅'이다. 25년간 무선통신 외길을 걸어온 양 사장이 지난 1999년 휴대폰 개발 전문업체인 벨웨이브를 설립한 뒤 양 사장과 벨웨이브에게 '시장'을 제공한 곳이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중국을 향한 양 사장의 애정은 대단하다.

"올해 안에 중국에 생산공장과 연구법인을 세울 생각입니다. 이번 중국 방문 때 중국 업체와 합작 공장 설립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그의 중국 사업은 또 끊임없이 중국 조선족과 연결됐다.

"장차 조선족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동북 3성에도 휴대폰 공장을 세울 계획입니다. 중국은 땅이 넓어 물류 비용을 줄이려면 공장을 여러 곳에 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동북 3성도 매력적이지요. 또 동북 3성에서 유통법인도 설립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양 사장은 이를 위해 최근 중국 법인 대표를 영입했다. 중국 한족 출신이다. 이 점에서 양 사장은 조선족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중국 사업은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전문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 채용한 중국 대표는 제가 2년간 쫓아다니며 설득해 모셔온 것입니다. 그는 평양에서 10여년간 있었던 지한파이며, 최근 2년간은 중국기업의 한국 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중국과 한국, 북한을 동시에 잘 알지요.

미래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또 IT 분야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런데다 품성도 좋은 사람입니다. 아직 발이 넓지 않아, 조선족 가운데 이런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런 분을 만나고 일을 도모해야지요."

벨웨이브, 양기곤 그리고 중국

3월말 산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월 벤처기업 수출 실적에서 벨웨이브는 6천400만 달러를 기록, 지난해 1위 휴맥스를 제쳤다. 벨웨이브는 지난 해에도 1억3천만 달러의 수출로 휴맥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4월말 기준 매출은 지난해 매출 2천600억원에 육박하는 2천100억원. 순이익은 매출의 15%에 달하는 310억원 가량이다. 이런 추세면 올해 보수적으로 설정한 4천800억원의 매출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휴맥스의 매출 목표인 3천844억원도 훌쩍 뛰어넘어 그야말로 '무서운 아이'가 되는 것이다.

벨웨이브의 성공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최첨단 제품인 휴대폰으로, 그것도 한국형인 CDMA가 아니라 유럽형이고 중국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GSM 방식으로 이룩하고 있다는 데서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초 중국 시장에서 처음 선보인 '판다' 모델은 지금까지 모두 350만대가 팔렸다. 더구나 60만원대의 고가 제품이었다.

'판다'가 히트하자 중국 최대의 휴대폰 업체인 닝보버드(寧波波導)가 러브콜을 보내왔다. 닝보버드와는 GSM 4개 모델, CDMA 1개 모델 등 5개 모델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안테나가 몸체 안으로 들어간 인테나폰, 폴더를 열어도 LCD 두개 창이 동시에 뜨는 듀얼 LCD폰이 히트를 예고 하고 있다. 닝보버드는 이들 상품 광고비로만 모두 9천만위안(한화 약 150억원)을 쏟아부을 예정이라고 한다.

벨웨이브의 이같은 약진은 철저한 '윈-윈'과 '글로벌 전략' 덕분이다.

이 회사는 사업 초기 미국 반도체 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또 TI의 GSM 휴대폰 칩에 관해 전략적으로 제휴했다.

최근에는 일본 손정의 회장 산하의 SBK도 벨웨이브에 수백억원을 투자하였다. 벤처기업 벨웨이브는 기술과 자본 측면에서 초기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또 제품의 현지화도 주효했다. 양 사장은 "빨강 등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색깔과 디자인, 적당한 크기 등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양 사장(49)은 25년간 무선통신 외길을 걷고 있다.

1985부터 1994년까지 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재직할 때는 CDMA 이동통신개발의 주역이었으며, 1995년 코오롱그룹에 스카우트돼 017 신세기통신(현재 SK텔레콤에 흡수합병) 사업을 주도했고, 1997년부터 팬택 연구소장을 지냈다. 지난 1999년 벨웨이브를 설립하며 직접 경영에 나서면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사진=이원기기자 yiwong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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